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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모두를 위협하지만, 피해는 평등하지 않았다
전염병은 인간 앞에 평등하게 퍼지는 듯 보이지만,
실제 그 여파는 사회 구조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파괴한다.
감염병의 위험 앞에서
누가 먼저 안전한 곳으로 피하고,
누가 가장 나중에 치료를 받으며,
누가 가장 쉽게 희생되는가는
그 사회의 계급 구조, 자본 분포, 권력관계를 여실히 드러낸다.이번 글에서는 팬데믹이 드러낸 계층별 생존의 조건과
그로 인해 사회 질서가 어떻게 재편되었는가를 살펴본다.
1. 흑사병과 농노의 몰락, 귀족의 두려움
1347년부터 시작된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당시 가장 많이 희생된 계층은 도시 빈민층과 농노였다.
좁은 집, 열악한 위생, 부족한 의료 접근성—
이들은 감염의 최전선에 놓여 있었다.반면 귀족과 고위 성직자들은
- 성 외곽의 별장으로 피신하거나
- 시골로 이동해 전염을 피할 수 있었으며
- 사제가 직접 찾아오는 가정 예배를 통해 안전한 신앙생활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구조는 아이러니하게도 귀족 사회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수많은 농노들이 죽자 노동력은 급감했고,
생존한 농노들은 임금을 요구하며 이동의 자유를 주장했다.
이는 중세 유럽의 봉건 질서를 흔드는 결정타가 되었다.
2. 조선의 전염병과 양반-백성 간 대응 격차
조선시대 역시 감염병의 피해는 하층민일수록 치명적이었다.
전염병이 퍼지면- 양반 가문은 기록 없는 지방으로 피신하거나
- 고급 약재와 의원을 동원해 자택 치료를 시도한 반면,
- 일반 백성은 관청에서 배급된 약 1~2첩과 묘약 없는 격리가 전부였다.
심지어 양반들은 자신의 하인이나 노비가 감염되면 버리거나 내쫓았고,
감염 여부에 따라 사람이 사람을 버리는 일이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받아들여졌다.이에 반해 병자촌이나 백성 중심의 공동체에서는
상부상조 형태의 **‘자연 돌봄 네트워크’**가 형성되기도 했다.
이는 체제 밖의 연대이자, 하층민의 생존 방식이었다.
3. 콜레라와 산업노동계급의 희생
19세기 콜레라 대유행은
도시 빈민층과 노동자 계급을 정조준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 국가들에서- 공장 노동자들의 집단 감염
- 공동 거주지에서의 확산
- 거리 노점상과 운송노동자의 사망
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당시 상류층은 콜레라를 “가난이 부른 병”,
혹은 “도덕적 타락의 결과”로 치부하며
실질적인 공공 의료 개입에 소극적이었다.그러나 여론과 민중 봉기의 압박 끝에
공공보건 개념이 태동하고,
하수도 정비·의무 격리·의료지원 제도화가 추진된다.질병이 만든 불평등의 분노는 곧 사회 개혁의 불씨가 되었다.
4. 스페인 독감과 ‘1등 시민의 생존권’
1918년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에서 약 5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특히 전쟁 중이었던 유럽과 미국에서는- 군 병력 우선 치료
- 귀족·공무원 우선 병상 확보
- 가난한 민중의 대규모 사망
이 반복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미국의 흑인 병사들은 별도의 진료소에서 차별 치료를 받았고,
가난한 이민자 계층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사망한 비율이 높았다.‘국가에 기여한 자’에게만 의료가 집중되는 구조는
질병 상황에서도 계급과 인종의 차별이 제도화되어 있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5. 코로나19 – 평등한 병, 불평등한 피해
코로나19는 기술과 의료가 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도
여전히 생존이 계급을 타고 결정된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사무직은 안전한 공간에서 일할 수 있었지만,
- 식당, 대리운전, 택배 등 현장노동자는 마스크 하나로 생존을 유지해야 했다.
- 자가격리가 불가능한 다가구 주택 거주자,
- 병상 부족으로 치료를 포기해야 했던 노년층,
- 인터넷이 없는 저소득층 아동의 학습 격차 등은
**“바이러스는 평등하지만, 삶의 조건은 그렇지 않다”**는 진실을 드러냈다.
특히 돌봄 노동, 필수노동자, 비정규직 등
‘보이지 않던 생명선’을 담당하던 계층의 부담은 감염보다 더 무겁게 남았다.
6. 결론: 전염병은 사회 구조를 비추는 거울이다
전염병은 누구나 감염될 수 있다는 점에서 평등하지만,
그 감염이 어떤 삶을 위협하는가는 불평등하다.질병은 의료 시스템의 접근성, 주거 조건, 노동 형태, 정보 격차를 통해
각기 다른 결과를 낳으며,
사회가 어떤 구조로 설계되어 있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그렇기에 팬데믹 이후의 사회는
단지 바이러스를 막는 것에 그칠 수 없고,
무너진 사람들을 복구하고, 불평등한 구조를 재설계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전염병은 위기이자 기회다.
누구의 생존이 우선되었는지를 기억하는 일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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