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4. 25.

    by. 전염학자 가인

    전쟁보다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간 팬데믹의 기록

    1918년, 인류는 두 개의 거대한 재앙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었다.
    하나는 총칼과 포연이 뒤엉킨 제1차 세계대전,
    그리고 또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더욱 치명적인 전염병, 스페인 독감이었다.

    놀랍게도 이 팬데믹은 전쟁보다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당시 세계는 전쟁에 모든 자원을 쏟느라 이 전염병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고,
    그 결과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질병 중 하나가 되었다.


    1. 스페인 독감의 발병과 확산

    스페인 독감은 1918년 3월, 미국 캔자스주의 군사 기지에서 처음 확인되었다.
    이후 유럽 전선으로 파병된 병사들에 의해 빠르게 확산되었고,
    그 해 여름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까지 퍼졌다.

    하지만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은 오해에서 비롯됐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참전국들은 사기 저하를 우려해 감염 사실을 은폐했고,
    중립국이었던 스페인만이 자유롭게 언론을 통해 감염 실태를 보도했기 때문에
    마치 스페인에서 발병한 것처럼 알려졌다.

    이 오명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질병의 명명 방식이 역사적으로 정치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2. 감염 규모와 사망자 수

    스페인 독감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 중 하나였다.
    당시 전 세계 인구 약 18억 명 중 약 5억 명이 감염되었고,
    사망자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5천만 명, 많게는 1억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는 14세기 흑사병이나 20세기 후반의 HIV/AIDS보다 훨씬 많은 수치이며,
    제1차 세계대전의 전사자 수 1,000만 명보다도 5~10배 이상 많다.

    특이한 점은 일반적인 인플루엔자가 노약자나 어린이에게 위험한 반면,
    스페인 독감은 오히려 20~40대 건강한 성인 남성의 사망률이 매우 높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사회와 군대의 핵심 노동 인력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질병의 파급력은 단순한 바이러스 확산을 넘어
    의료 인프라 붕괴, 행정 마비, 집단 패닉을 야기하며
    현대적 ‘팬데믹’의 전형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로 평가받는다.

    세계사 ❘ 스페인 독감이 세계 1차 대전에 미친 영향


    3. 전쟁 수행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

    스페인 독감은 단순한 보건 위기를 넘어,
    세계 1차 대전의 전황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

    병영 내 집단생활과 비위생적인 환경은
    질병 확산의 최적 조건이 되었고,
    전선에서 전투를 수행하던 군인들 사이에 감염자가 급증했다.

    특히 독일군은 1918년 가을, 결정적인 공세 직전에 대규모 감염 사태를 겪으며
    사기가 떨어지고, 전투력이 급격히 저하되었다.
    이 시기의 독일은 군사적 열세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혁명과 반란 조짐이 겹쳐 패전으로 내몰렸다.

    반면 연합국 측도 피해는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미국에서 파병된 병력으로 병력 손실을 보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투 지속이 가능했다.

    즉, 스페인 독감은 독일 패전의 직접 원인은 아니더라도,
    그 전쟁 역학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4. 민간사회와 경제에 끼친 여파

    스페인 독감은 전쟁과 동시에 민간 사회를 강타했다.
    사람들은 질병의 원인도 모른 채 두려움에 휩싸였고,
    대규모 격리, 자택 폐쇄, 학교 및 교회 폐쇄
    사회 전반의 활동이 멈춰 서게 되었다.

    경제적으로도 타격은 막대했다.
    노동 가능 인구의 급감은 생산력 저하, 공급망 마비, 소비 위축으로 이어졌고,
    전후 복구를 계획하던 각국은 예상보다 오랜 침체에 빠지게 된다.

    특히 중소기업, 자영업자, 일용직 근로자들의 피해가 극심했고,
    정부의 무대응 또는 대응 실패는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일부 국가는
    공공의료 시스템, 감염병 전문 병원, 방역 예산 확대에 나섰으며
    이는 현대 의료 체계의 전환점으로 이어진다.


    5. 대중의 기억에서 지워진 팬데믹?

    스페인 독감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팬데믹 중 하나였음에도
    오늘날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당시 사람들의 관심은 전쟁과 정치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는 전투의 영웅담처럼 기억되거나 미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언론의 검열, 정부의 정보 은폐, 가족을 잃은 슬픔의 회피 심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며
    사회 전체가 이 질병을 ‘공적 기억’에서 제외시켰다.

    결국, 20세기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는
    기억되지 않는 역사로 남았고,
    그 교훈은 100년 후 코로나19라는 또 다른 팬데믹이 오기 전까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6. 오늘날과의 연결

    2020년 이후 우리는 코로나19라는 현대의 팬데믹을 직접 경험했다.
    스페인 독감과 코로나19 사이에는
    기술, 의학, 사회 구조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유사한 교훈이 존재한다.

    • 질병은 사회 구조의 약점을 드러낸다.
    • 정보의 은폐는 확산을 부추긴다.
    • 공공의료 시스템은 국가 존립의 기반이 될 수 있다.
    • 팬데믹은 단순한 건강 위기를 넘어 사회 전환의 트리거가 된다.

    스페인 독감은 한 세기 전의 사건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전염병에 대응하는 방식과
    그로 인해 바뀌는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사적 참고점이 된다.


    마무리

    스페인 독감은 제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를 조용히 뒤흔든
    가장 조용하고도 치명적인 ‘전선’이었다.
    이 질병은 군대의 전투력을 약화시키고, 민간의 삶을 붕괴시키며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그 고통과 혼란은 역사에 오래 기록되지 않았다.
    이제라도 우리는 그 팬데믹을 기억하고,
    오늘날의 위기 대응에 역사적 통찰을 더할 필요가 있다.

    전염병은 인류의 운명을 결정짓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 중심에 우리가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기록하고, 분석하고, 기억해야 한다.